버려진 공터, 도시 생물다양성의 비밀 공간
도시에서 ‘버려진 공간’은 종종 무관심의 대상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 비어 있는 공터, 철거된 부지, 쓰레기가 쌓인 자투리 땅은 흔히 ‘쓸모없는 땅’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 공터들이 생태학자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사람의 간섭이 적고, 개발이 멈춘 그 공간은 의외로 다양한 생물들이 모여드는 생태적 핫스팟이다. 이른바 ‘도시 속 비의도적 생물 서식지’로서 공터는 도시 생물다양성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평소 무심코 지나치는 버려진 공터가 왜 도심 생물다양성의 숨은 보고인지, 어떤 방식으로 도시 생태계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본다.
1. 공터는 왜 생물에게 매력적인 공간일까?
사람이 관리하지 않는 공간은 생물에게는 기회의 땅이다. 잔디를 깎지 않고,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며, 조명이 밝지 않고, 소음도 적은 공간은 곤충, 식물, 조류에게는 자연 그대로의 생태 환경과 유사하다. 특히 다양한 식물종이 자연적으로 자라나면서 곤충과 토양 미생물이 유입되고, 이것이 곧 조류와 포유류로 이어지는 생태적 먹이 사슬의 기반이 된다.
2. 도시 공터의 생물다양성 사례
서울 도봉구의 한 폐건물 부지에서는 철거 후 3년 만에 45종 이상의 자생 식물과 30종이 넘는 곤충이 관찰되었다. 또 경기도의 한 폐공장 주변 공터에서는 삵과 고라니의 배설물이 발견되며, 야생동물이 도심 가장자리까지 서식지를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런 공터는 개발되지 않은 채 수년간 방치되어 있었고, 생물의 ‘도피처이자 번식처’로 기능하고 있었다.
3. 생태계의 회복력(Resilience)이 드러나는 공간
공터는 도시 생태계의 자연 회복 능력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스팔트가 갈라진 틈에 자생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비가 고인 웅덩이에 개구리가 알을 낳는다. 인간의 개입 없이도 자연이 스스로 구조를 회복해가는 과정은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특히 이런 공간은 기존의 도시 공원보다 생태적 순도가 높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위적인 설계가 없기 때문이다.
4. 생물 이동을 위한 ‘녹색 중간지대’ 역할
도시의 생물들은 한 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시 생태계는 작고 단절된 녹지들이 끊임없이 연결될 때 유지된다. 공터는 이 연결망의 중간 연결 지점(Habitat stepping stone) 역할을 한다. 곤충이나 조류가 멀리 이동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이런 공터는 이동 중 잠시 머물 수 있는 중요한 쉼터로 작용한다. 특히 나비, 벌, 참새, 박새 등 도심 생물들이 자주 들르는 공간이다.
5. 무분별한 개발이 가져오는 생태적 손실
많은 공터가 개발 대상이 되면서 도시의 잠재적 생태자원이 사라지고 있다. 생물이 오랫동안 머물며 적응해온 서식처가 하루아침에 콘크리트로 덮이는 경우, 그 지역 생물군은 이주하지 못하고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도심에서 가까운 공터는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핵심 서식처’로 기능할 수 있는데, 이런 공간들이 환경영향평가 없이 개발될 경우 도시 생태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6. 공터를 활용한 생태 복원 가능성
버려진 공터를 완전히 개발하는 대신, 부분적으로 자연 상태를 유지하거나, 지역 자생종 중심의 생태 정원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점차 주목받고 있다. 이런 접근은 자연성과 도시 기능을 동시에 확보하는 지속 가능한 전략이다.
실제 유럽 일부 도시에서는 공터를 인위적으로 정비하지 않고, 관찰과 모니터링을 통해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고 있다. 도시 속 생태적 실험장으로서의 공터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버려진 공터는 그 자체로는 무질서하고 불완전한 공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도심 생태계가 자생적으로 살아 숨 쉬는 흔적이 가득하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틈에서 생물은 되려 더 자유롭게 살아간다. 공터는 단지 ‘빈 땅’이 아니라, 도시 생물다양성이 일어나는 조용한 무대다. 우리가 이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도시의 생태 미래도 달라진다.
이제는 도시계획 속에서 이런 공터의 생태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전할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그것이 진정한 생태도시로 가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