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가 조용해지는 ‘심야’나 ‘새벽’ 시간대를 그저 휴식과 정적인 분위기의 시간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시간대는 도시에 사는 다양한 생물들에게는 가장 활발한 활동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도시의 소음과 빛이 줄어드는 새벽에는 야행성 생물과 새벽형 활동 생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이들은 낮에는 전혀 볼 수 없는 행동과 패턴을 보인다.
도시는 잠들었지만, 생태계는 깨어나는 시간.
이 글에서는 도시 속에서 새벽에 활동하는 주요 생물들과 그 생태적 의미, 그리고 이들이 도시 생물다양성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관찰자적 시선으로 살펴본다.
1. 왜 새벽 시간대에 생물들이 움직일까?
도시 생물 중 상당수는 야행성 혹은 여명형(Crepuscular) 활동 특성을 가진다.
이들이 새벽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인간 활동이 적다: 차량 소음, 조명, 인위적 간섭이 줄어드는 시간
- 포식 위험이 낮다: 야생동물끼리의 경쟁도 상대적으로 낮음
- 온도 조건이 안정적이다: 여름철엔 더위 피할 수 있고, 겨울엔 밤보다 덜 춥다
- 도시 조명의 영향 최소화: 일부 생물은 인공광에 민감한 반면, 새벽엔 광량이 낮아 움직이기 좋음
결국 새벽은 도시 생물에게 있어 먹이활동, 번식, 이동 등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틈새 시간'이다.
2. 도시 새벽에 주로 활동하는 생물들
🟢 너구리, 고라니, 삵 등 야생 포유류
서울, 부산 등 대도시 외곽에서 관찰된 야생 포유류들은 주로 새벽 2~5시 사이에 출몰한다.
CCTV 관측 결과, 이들은 주거지역과 하천변을 오가며 먹이를 찾는다.
🟢 참새, 직박구리, 박새 등 조류의 첫 울음
도시의 아침을 알리는 조류의 소리는 대부분 일출 30~60분 전부터 시작된다.
이 시간은 조류의 영역 표시, 짝짓기 유도, 먹이 확보 활동의 시작점이다.
🟢 고양이와 길고양이 커뮤니티
길고양이는 야행성에 가까운 습성을 보이며, 새벽에는 인간 간섭 없이 서로의 영역을 순찰하고, 번식기엔 교미 행동도 관찰된다.
🟢 청개구리, 도롱뇽 등 양서류
습지 인근 도심 지역에서는 새벽에 주로 산란 활동이 이루어진다. 밤사이 기온이 오르면 이동 경로도 더 활발해진다.
🟢 야간 곤충류: 나방, 딱정벌레, 무당벌레 일부
가로등이 꺼진 직후인 새벽 3~4시에는 광해에 방해받지 않고 나뭇잎, 꽃 주변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시간대는 수분(꽃가루 옮김) 활동이 이뤄지는 핵심 타이밍이기도 하다.
3. 새벽 생물 활동이 도시 생태계에 주는 생물다양성 효과
🔹 생물 간 경쟁 완화
동일한 공간을 사용하는 생물들이 서로 다른 시간대를 이용함으로써, 경쟁을 피하고 공존이 가능해진다.
🔹 도시 먹이사슬의 균형 유지
곤충 → 조류 → 포유류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구조가 새벽 시간에 대부분 순환되기 시작한다. 특히 곤충의 새벽 활동은 조류의 아침 먹이활동을 직접 뒷받침한다.
🔹 생물 이동성과 유전자 다양성 증진
포식자 회피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으로 활용되면서, 결과적으로 도시 내 생물의 이동 경로가 확보되고, 유전자 교류가 이뤄진다.
🔹 도시 내 '조용한 생물권' 확보
새벽 시간대는 인위적 간섭이 가장 적은 시간대로, 생물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제공하는 시간이다.
4. 도시 환경 변화가 새벽 생물에 미치는 영향
도시 조명의 증가, 24시간 운영 매장, 새벽 청소 차량 등의 활동이 새벽 생물들의 행동 패턴을 점점 바꾸고 있다.
예를 들어,
- 조명이 켜진 공원에서는 조류의 첫 울음 시간이 30분 이상 지연되거나 아예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
- 무분별한 청소차량 소음으로 인해 새벽 포유류가 이동 경로를 변경하거나, 도심 진입을 회피
- 강한 LED 조명이 새벽 곤충의 방향 감각을 교란해 먹이활동에 실패하는 경우도 증가
이런 변화는 단지 한 종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 생물다양성의 교란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5.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도시의 새벽을 생물과 함께 나누기 위한 작은 실천:
✅ 도시 조명 줄이기: 새벽 시간대 조명 OFF 정책 또는 스마트 조명 도입
✅ 공원·녹지 새벽 소음 최소화: 기계 소리 제한 시간 설정
✅ 생물 관찰 시민 프로젝트 참여: iNaturalist, ebird 같은 앱 활용해 생물 활동 기록
✅ 도심 속 새벽 생물 모니터링 지원: 지자체 시민과학 프로그램 확대
도시는 잠들었지만, 자연은 그 시간에 깨어난다.
새벽 시간대는 도시 생태계에서 가장 은밀하고 중요한 생명 순환의 시간이다.
이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생물의 활동은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도시 전체의 생물 다양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우리가 이 시간대의 생물 움직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할수록,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 생태계 설계도 훨씬 더 정교해질 수 있다.
내일 새벽, 당신의 집 주변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잠시 귀 기울여 보자.
그것이 바로 도시가 살아 있다는 가장 조용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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