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생물

콘크리트 벽 틈의 생명: 도심 속 이끼와 선태류

info-blog-note 2025. 7. 16. 09:05

콘크리트 벽 틈의 생명: 도심 속 이끼와 선태류를 설명하는 사진

 

회색 콘크리트 틈새에서도 생명은 자란다.

도심 속 습한 그늘에서 살아가는 이끼와 선태류는 어떻게 생존하며, 도시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곳에서 피어난 생명

사람들은 보통 이끼를 보지 못한다. 아니, 보고도 무시한다.
하지만 건물 벽면의 틈새, 오래된 인도 블록의 이음새, 배수관 주변의 그늘진 벽 아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조용히, 끈질기게 자라난 생명체가 있다. 바로 이끼와 선태류다.

도시는 콘크리트로 덮인 공간이다.
자연의 땅, 물, 공기가 인공 구조물로 대체되면서 대부분의 식물은 도시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선태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이끼류는 뿌리가 없고, 미세한 수분만으로도 생장을 시작하며,빛이 거의 없는 그늘에서도 자랄 수 있는 놀라운 생리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도심 속에서 자라는 이끼와 선태류가 어떻게 생존하고,
어떤 생태적 기능을 수행하며, 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생물군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선태류란 무엇인가?

선태류는 일반적으로 이끼, 간이끼, 뿔이끼 등으로 분류되는 원시적인 육상 식물이다.
이들은 뿌리 대신 ‘근사체’(rhizoid)라 불리는 섬유질 구조로 표면에 부착하고,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 종자(씨앗)가 아닌 포자를 통해 번식
  • 대부분 키가 작고, 군집 형태로 자람
  • 물과 습기에 민감하며, 청정지역 또는 미세서식지에 주로 존재

도시 환경에서는 이끼류가 가장 흔하게 관찰되며, 주로 콘크리트 벽, 돌담, 화단 주변의 습한 그늘 등에서 자란다.

 

 도심에서 이끼가 자라는 조건

도시라고 해서 이끼가 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조건이 형성되면,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서도 이끼가 번식한다.

조건
습기 배수관 누수, 틈새 물 고임 등은 이끼 생장을 유도함
그늘 햇빛이 적은 북향 벽, 고층 건물 사이, 지하 통로 인근
표면 거칠기 미세한 틈이 있는 콘크리트 벽이나 석재 위에 잘 부착됨
화학물질 노출 최소 제초제나 세척제가 적은 지역에서 더 잘 자람

 

📌 실제로 서울시 종로구의 오래된 건물 외벽에서는
다양한 이끼 군락이 수직 벽면을 따라 띠 모양으로 번식하고 있는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콘크리트 벽 틈의 생명: 도심 속 이끼와 선태류를 설명하는 사진

 

 도심 이끼와 선태류가 가진 생태적 역할

1. 도시 미세기후 조절

이끼 군락은 증산작용을 통해 표면 온도를 낮추고 습도를 유지하여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데 작지만 상당한 기여를 한다.

 

2. 미세먼지 흡착 및 대기 정화

선태류는 표면이 매우 넓고 부드러워 공기 중의 먼지, 금속입자, 세균 등을 흡착하는 성질이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끼가 공기청정기처럼 작동한다는 결과도 확인되었다.

 

3. 미세서식지 제공

이끼층은 곤충, 거미류, 작은 절지동물의 서식지가 된다.
도시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이끼는 곤충 다양성을 유지하는 생태 토대가 된다.

 

4. 빗물 저장과 도시 수문 순환 기여

비가 내릴 때 이끼층은 수분을 흡수했다가 천천히 방출한다.
이는 배수부하를 줄이고, 도시 내 미세한 수문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왜 우리는 도심의 이끼에 주목해야 하는가?

도시에서 이끼와 선태식물은 흔히 '제거해야 할 오염물질'로 여겨지곤 한다.
이끼는 건물 청소, 미관 관리, 벽 방수 등을 위해 끊임없이 제거되고 있으며,

그 생태적 가치는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끼는 사실 도시 생태계의 최전방에서 생명 유지 기능을 수행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콘크리트 벽의 틈새에서 조용히 도시 생물다양성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선태식물은 기후 변화에 민감한 대표 지표종이기도 하다.
미세기후 변화, 습도 변화, 대기질 변화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선태류 보전과 도시 설계의 새로운 방향

도시 계획에서 이끼를 활용하거나 보호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도쿄 빌딩 옥상 벽면에 일부러 이끼를 조성해 도시 온도 저감 실험 수행
함부르크 버스정류장 벽면에 ‘모스 월(Moss Wall)’ 설치, 공기 정화 테스트
서울 일부 친환경건축물에서 이끼형 벽면 녹화 시도 진행 중
 

도시는 앞으로 미세서식지 단위의 생태계 설계를 고려해야 한다.
작은 틈, 작은 그늘, 작은 물웅덩이까지 생명의 기반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작고 조용한 생명이 지키는 도시의 생태 균형

이끼는 소리 없이 자란다.
그 누구도 돌보지 않아도, 햇빛이 없고 흙이 없어도, 그들은 콘크리트 벽의 틈에서 생명을 피워낸다.

도시는 자연을 밀어내지만, 이끼는 다시 도시를 생명으로 채운다.
그 존재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진짜 도시 생태계 복원의 시작이 될 것이다.